스페인 여행을 가기 바로 전에는
리투아니아 경영대에서 교환학기를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 있는 모교 전공 이수학점을 졸업 전까지 맞추기가 빠듯하단 이유로
거진 교환학생으로 유럽까지 와서도- 경영수업으로 커리큘럼을 짠 것이지만
낯선 과목을 외국의 타 대학 건물에서 덩그러니 듣기에 두려웠던 건 별개의 이유다
허나 한 선택지만은 내 comfort zone을 꼭 벗어나고자 다짐 후
내가 다니는 현지 대학교가 별개로 학점교류 결연을 맺은
(같은 도시 내) 타 학교의 수강 신청을 알아봤었다. 결국 2차 교류를 신청한 것!
어렸을 적 미술을 했던 나였기에 미대 수강을 은근히 원했었으나 신청 시기를 놓쳤고,
접점이 과연 있을까 의문인 채 훑어 본 리투아니아 음악대학교 수업을 보니,
교환학생을 위한 특별 강좌가 의외로 잘 개설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현지어 아닌 영어 강좌)
건물의 삐걱거리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 오래된 건물 벽을 통해 학생들의 성악 연습 소리가 울리는
바로 2층에서 Public Speaking 수업을 수강했다. 교수님을 제외한 수강생이
나까지 총 다섯이었던 굉장한 소규모의 수업, 그곳에서 마르타를 알게 되었다.
세비야 출신으로 연기 공부를 하는 친구였는데
발랄한 성격 대비 은근히 친해지기 어려웠던...
그럼에도 내가 세비야로 여행을 간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자기 남동생도 소개시켜주고,(마침 그가 세비야를 비우는 주 내가 여행 가서 만나지 못하게 되었지만)
현지 유명한 speakeasy 펍도 알려주고,
또 꼭 먹어 보아야 할 타파스 집도 소개시켜 준 고마운 마르타를 오늘 이렇게 기억한다.
수업을 선택하는 걱정스러운 내 마음부터, 하나 하나 모든 단계가 이어지고
그리운 한 여행지의 추억이란 꽃으로 피어나기까지
인생의 나비효과란 실로 대단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해당 사진은 내가 장소를 저장하고 투어를 다녔던 세비야 지도이다.
북서쪽 중심가에 내가 다녀왔던 도스 데 마요 타파스 집이 보여 식당 이름을 기억했다
당시엔 잘 못 느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가게였던 듯.
당시 세비야에서는 새로 리모델링 해서 주인아저씨의 자부심이 돋보이는, 채광 좋은 호스텔에 머물렀는데
같은 방의 내 침대 바로 옆 윗층을 사용하는 친구와 말을 텄다.
스스럼 없이 자기 소개를 나누고, 다소 수줍으면서도 서로 부담 없이 이야기를 하기 좋았던 친구 노에미.
서로 조심스럽게 다음 날 오후 일정을 같이 보내자고 이야기가 나와서 Dos De Mayo도 같이 가고
후식으로 세비야에서 꼭 먹어봐야 한다는 초콜릿 퐁듀 츄러스 원정도 같이 했다.
함께 타파스를 즐기러 간 이 집에서 참 마음에 들었던 건 앙증맞은 크기의 맥주잔.
맥주를 한번에 많이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커다란 맥주잔은 내게 부담스러운데,
사진에 보이는 것 보다 실제로 더 조그마했던 저 잔의 맥주.
작은 용량으로 파는 맥주는 내게
시원함이 가시기 전에 더 벌컥벌컥 마시기 좋은 느낌이라서 선호한다.
마르타가 알려준 가게를 찾아 골목길 이곳저곳을 돌다가 여기다 확신이 들었을 때
문턱에 덜컥 들어가 공간과 참 잘 어울리던, 자기 일을 즐김으로서 편해 보이는 호스트의 리드를 따라
먹어보고 싶은 특제 타파스 메뉴를 골라 주문하는데
굉장히 저렴한 가격의 숨은 비밀은 바로 메뉴 한 가지가 저 한 입 크기로 서빙된다는 것.
보통 타파스라도 앞접시만한 각 메뉴로 그릇에 덜어 나오고,
빵이나 비스킷 류는 따로 내어 오는 식도 있겠지만 이 집은 간단하다.
메뉴 하나에 타파스 조각 한 개.
그 한 입 베어물기 전 까진 '환상적인' 조각이란 거 몰랐지만서도,
맛을 혀 끝에서 극대화시켜주는 넉넉한 소금 결정과
진한 올리브 오일.
요것 한 점, 저것 한 점 오물오물 돌려서 씹어보며 그 음식의 맛에 집중하는 경험 사실 흔치 않은 것 같다.
한 상 차려놓고 푸짐하게 한국에서 먹을 때와는 다른 그런 타파스의 매력인 것 같다
맛있게 배를 채운 뒤 같이 먹기로 약속한 츄러스를 찾아 나선 곳,
도시 관광지 중심가에 후기를 보고 북적거리던 가게의 손님 중엔 한국인 분도 여럿 계셨다.
직접 짜는 것 같던 오렌지 주스, 그 잔해인 껍데기도 많이 보이는 집에서 츄러스를 먹을까 하다가
발걸음을 돌려 다른 길로 돌아 돌아 찾아 간 곳은 바로 여기.
야외 좌석에 앉았다.
당시 12월이었으나 남부 유럽이라 그런지 바깥에서 앉아 있을만 했던 날씨였나보다
(저기 뒤에 보이는 건 메트로폴 파라솔)
가게 안에서 주문을 하고
츄러스를 만드는 데 참 오래 걸린다- 둘이 이런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데
결국 음식이 나오자 마자 행복히도 먹어 치웠던 맛집!
뜨끈한 코코아에 바삭하고 얇은 츄러스를 슬쩍 담궈
뚝 뚝 떨어지는 쵸콜릿이 바닥에 닿기 전 입에 먼저 넣어
체면은 잠시 치웠던 그 날의 디저트
좋은 여행의 8할은 음식일까 그곳의 사람일까
그 조합이라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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