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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s

기억나는대로, 세비야

뭐든 완벽하게 기록하기 어려운 것 같아

더군다나 나같이 생각이 너무 많아서,

 

생각의 흐름이 주제와 시간을 불문하고 휙휙 넘어다니면 특히

뭔가를 분류하고 정리하기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까 더 쉽게 얘기를 기록해야, 그 다음 뭘 써야 할 지 알 것 같으니까 

행복했던 일화 하나,
일화 둘 이렇게 써 보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기억 하나 하나, 여정 하나 하나, 그 순간들 모두 아까워서 내가 ‘나중에-‘하며 미루게 되면

준비가 다 되고, 소재들이 정리될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누군가는 내 이야기를 읽을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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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비야에서 기억나는 식당은 두 곳.

 당연 기억나는 펍은 또 한 곳.

 

첫번째는 내가 구글 지도에서 타파스 맛집을 찾아보며

나름대로의 기준으로 별표를 쳐 놓고 걸어 들어간 곳이다.

한국 관광객들이 스페인에 참 많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딸려 나오던 한국어 메뉴판.

 

여기서 밥 먹기 너무 상업적일까 지금 쓰자니 이런 생각 들었을 법 한데,

당시엔 읽기만 해도 군침이 도는 이색적인 메뉴 종류에 한 숨 놓았던지.

 

우선 메인 메뉴가 나오기도 전에, 빵과 비스킷이 귀여운 한 바구니 내 앞에 놓여졌다

 

 

 

 

글을 먼저 쓴 뒤 사진을 첨부해 당시 상황을 들여다 보는 기분이 색다르다

 

 

타파스의 최장점, 내가 친구들에게 입이 마르도록 가끔 얘기하던 건

나홀로 여행객인데다 더군다나 입맛이 여러가지 차려놓고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타입이라

같이 시켜 나눠먹을 친구 없던 혼자만이

부담 없이 여러 메뉴 시켜먹기엔 세비야 타파스 식당이 참 좋았다.

 

 

 

아쉽게도 정확히 어떤 고기였는지 생각이 잘 안 나는 이 메뉴이지만,

참 재밌는 건 이 특이한 소스 맛이 아직도 혀 끝에 감도는 것만 같다

참 신기하다 경험과 기억이란 건. 다소 알싸한 듯한 이 주황빛의 소스 참 식욕을 더 돋괐었지

 

 

 

 

오른쪽은 매콤한 소 꼬리 요리. 왼쪽은 치즈스틱이다.

 

 

 

나도 언젠간 여행자가 들러 만족 가득 안고 돌아갈 수 있고 

현지 부부가 샹그리아 한 잔 하러 기억하고 들를 수 있는 가게, 운영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든다.

 

 

사진을 보고서야 이 치즈스틱 안에 햄이 겹겹이 있었다는게 기억이 난다.

바로 위 메뉴 설명에선 기억하지 못했던 부분인데 이렇게 사진을 보니 또 기억이 난다.

 

 

 

 

첫 홀로 하는 유럽 여행인데 달콤한 술 한 잔 빠질 수 없지, 하며 주문한 샹그리아

과즙을 가득 머금고 있는 오렌지와 아낌없이 들어간 과일을 보니 지금도 기분이 좋아진다.

 

세비야의 이 식당에서는 맛 좋게 식사를 한 이후

구글 번역기에 이렇게 영어로 적었다.

 

Your food showed heaven to my tongue.

 

가게 초입에서 손님 호스팅 하랴, 나오는 메뉴 빼 주랴 바쁜 아저씨들께 방해가 될 까봐 고민하다가

기회를 틈 타서 스페인어로 번역한 메세지를 보여 드렸다.

 

밥을 먹고 나가며 자기 핸드폰 스크린을 들이미는 손님이 당황스러울 만도

처음엔 바로 이해하지 못 하시다가, 화면에 적힌 글을 보고 껄껄 웃어주시는 모습을 본 뒤

 

만족스러운 미소를 띄고 가게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