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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 -1.

HeyMean 2019. 10. 22. 14:28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들은 끝이 없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크루아상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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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0년정도 전, 우리 집이 좀 더 좋은 새 집으로 이사하면서

입주 옵션으로 커다란 오븐이 들여졌고,

그때부터 가족의 식생활도 다채로워졌다.

 

어머니께선 커다란 오븐에서

피자를 직접 구워주시기도, 동생 유치원에 보낼 대형 케이크도,

딱히 오래 손꼽아 기다리기도 전에 또 먹게 된

그만큼 종종 만들어 주셨던 치즈 그라탕도. 뭐든지 척척 구워내주시곤 했다.

 

 

양념을 고루 바른 등갈비 요리도,

커다란 넓적 닭다리살 요리도 척척 어려움 없이 해주시곤 했어서

어느 시점부터는 오븐 전용 가재도구도 조금씩 늘어가,

 

한참 방과 후 학원을 다니던 그 시절

 집에서 시간이 남은면 혼자 투니버스를 보다가 문득 두세시간 안에

레시피를 보고, 엄마와 함께 만들었던 기억을 참고하며 쿠키를 어려움 없이 굽기도 했다.

 

새 가전제품이니만큼 엘지전자에서 오븐과 함께 보내준 요리책에는

당시 이렇다 즐기고 있던 미디어를 접하지 못했던 열 세네살 남짓의 내게

꼭 요리를 할 때 만이 아니더라도 퍽이나 읽기가 재밌었던 모양인 콘텐츠가 있었다.

 

 

선명한 고화질 사진들은 다채로운 레시피 정보와 함께

손가락이 베일까 무서울 만큼 윤기 나고 뻑뻑한 종이에 실려서

아마도 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특정 음식에 대해 먼저 떠오르는 대표 이미지로 남았다.

 

요리책 한 켠인 크루아상 레시피 페이지에는

반죽을 도마에 펴서 삼각형 모양들로 가르고

 이를 굴려 만드는 방법 하나하나가 참 흥미로웠고

결과적으로 탄생한 페이지 속 크루아상이 정말 맛있어 보였는데

 

 

좀 더 커서 기회가 되어 사먹어 본 크루아상은 기대에 미치지 못 했던 것 같다.

아무런 기대도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필 만드는 방법과 과정마다의 이미지부터

먹음직스러운 완성 모양새까지 실린 잡지를 너무나도 유심히 읽은 탓에

한 결 한 결 버터에 저며 있어 바삭하고 노릇해야 할 크루아상에 대한 내 기대는 너무 높기만 했던 것이다.

 

 

제대로 먹어보지도 못한 채 기대만 높았던 이 빵에 대해 언제부터인가 시큰둥해 진 이후

어느 새 유럽에서 시간을 보내며, 포르투에서 에그타르트를 굳이 몇번씩 더 사 먹었던 것 처럼

프랑스에서 굳이 크루아상을 찾았다. 당연하거나 아니거나. 

 

본인의 다른 친구와 나를 겸사겸사 만날 겸 프랑스 안의 다른 도시에서 파리로 왔던 친구를 옆에 끼고서도


다른 한 날은 여행 중 알게 된 한국인 동행과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하면서도

'노릇하고 버터리한' 크루아상을 그렇게나 찾았는데, ('눅눅한 크루아상은 안 돼' 하며)

 

오후쯤 거의 다 팔렸을 때 아침에 구워뒀을 가능성이 높은

내 손에 받아든 크루아상은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되려 묵었던 호스텔에서 아침 조식으로 제공되었던 크루아상이 더 맛있었다.

내가 먹기 전 바로 구운 걸 호스텔의 누군가가 사 왔기 때문에.

 

그래서 지금도,

스타벅스를 잠시 들리거나

샌프란시스코의 작은 베이커리나 카페 옆을 지날 때 크루아상을 한 개 사 먹을 생각을 하면 기분이 쉽게 벅차다.

 

크루아상 그 자체보다도

그날 내가 먹게 될 그 크루아상은 운 좋게도 내가 원하는 바삭함과 노릇함과 버터를 가득 머금고 있을까 해서,

그래서 운이 좋으면 삼박자 이상으로 작은 빵 하나가 내게 줄 수 있는 행복감 충족 요건에 맞아 떨어지기도 해서.

 

운이 조금 덜 좋아서 

한 입 베어먹는 순간 파삭- 가루가 입 주위 사방으로 터지지 않아도,

이것들을 한 때 다 머금었다 조금 눅눅해 졌을 뿐인 크루아상인지라 그렇게 나쁠 것도 없다.

 

 

수중에 남은 큰 돈이 없어도

출근하기 다소 즐겁잖은 아침을 기분 좋게 만들거나

느즈막히 일어나 기분이 언짢은 주말 나머지를 좀 더 신나게 만 들 수 있는 것

 

크루아상 하나 사 먹자, 하는 생각이다.